[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나도 입시가 낳은 괴물임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직지!라고 하면 청주고인쇄박물관이 먼저 떠오른다. 학창시절 현장 체험학습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래서 더욱 영화 <직지코드>에 끌림을 느꼈다. 정말 오랜만에 독립영화를 만났다.

 

영화의 시작은 다음과 같다.

"구텐베르크는 독자적으로 금속활자를 개발하였는가?"

 

유로 센트리즘을 지적한다.

유럽 중심의 역사관을 비판하며 고려의 금속활자가 유럽의 금속활자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가정을 세우고,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발로 뛴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하다.

서양인이 유로센트리즘을 지적한다는 것만으로도 구미를 당긴다.

그리고 직지는 그의 주장을 펴나가는 수단이 된다.

 

과정이 매우 흥미롭다.

역사의 기록들을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장벽을 넘기 위한 노력이 매우 흥미롭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결국 그들은 스스로가 피상적인 것에 매몰되었음을 지각한다.

물론, 금속활자의 개발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따라서 누가 개발하였는가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은 현대인에게 중요한 것일까?

 

'최초'라는 것은 의미가 있다. 다만, 그것에 매몰된다면 의미를 상실한다.

금속활자는 왜 만들어졌는가?

'보급'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누가 먼저' 보급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보급하기 위해서였는지가 중요하지 않을까?

 

영화는 직지의 의미를 다시 찾아 떠난다.

그것이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판본이어서가 아니라,

대체 직지에 어떤 내용이 담겨있기에 금속활자로 찍어냈는가에 초점이 맞춰진다.

 

뻔할 뻔한 영화였다. 하지만 후반부에 뻔할 뻔한 메시지를 급선회한다.

뒤통수를 강하게 맞고, 정신을 차릴 때 쯤엔 이미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비상구에 불이 환히 켜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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