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눈이라도 내렸으면>
인상적인 대사, "들고 있자니 팔이 아픈데, 내려 놓자니 가슴이 아파요."에서 여주가 들까, 내릴까를 고민하는 것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조심스럽게나마 그것이 자신이 맞닥뜨린 사회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누구도 도움주지 않는 곳, 사실 이전에도 도움 받아 본 적 없지만, 깊은 교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어도 그나마의 친구도 없는 그 곳이 여주가 마주친 사회다. 사회로 나온 자신의 삶을 유지하자니 너무나도 힘이 드는데, 그 것마저 놓아버리면 너무나도 외로워지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닐까.
영화 제목에 이끌려서 영화를 접하게 되었다. 너무 더운 날씨에, 비조차도 반가운 여름에 상영하는 영화제목에 '눈'이라니. 시에서 '눈'은 시련의 상징인데, 그런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니. 혹, 삶이 너무나도 힘들기에 눈이라도 자신을 덮어주길 바라는 건지 궁금했다. 자연스레 마음이 끌렸다.
불편함이 만연한 사회를 비웃기라도 하듯, 영화는 불편함으로 물들어 있다. 주인공은 지체장애를 겪고 있는 남성과 막 수능이 끝나고 취업전선에 뛰어든 여학생이다. 남주는 지하철 역 신문 가판대에서 신문을 판다. 남주의 주변인들이 남주에게 마실 것을 줄 땐 항상 빨대를 꽂아주는 배려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불편한 몸을 이끌고 신문을 파는 그에게 어떤 이도 따스한 정을 주진 않는다. 한 번 쯤 가판대를 쳐다봄직한데, 행인들은 남주에게 뒷모습만을 보여주며 시선조차 보내지 않는다. 심지어 남주가 걷는 길에는 항상 사람이 없다. 여주의 길도 순탄하지 않다. 아직 미성년인 여주이지만, 어떤 이도 여주의 미래에 대해 관심을 주지 않는다. 담임 선생은 여주와 상담하는 중에 "수능 끝난 고3은 백수다."라고 하며, 여주의 이야기는 듣지도 않은 채 취업을 권한다. 상담 직후에는 바로 동료 교사에게 술약속을 청하며 무심함을 부각시킨다. 그렇게 취업한 사무실에서는 여주에게 희롱과 성추행을 서슴지 않는 상사가 있고 그 상사의 언행에 어느 누구도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리고 후반부가 되어서야 여주의 아버지가 등장하나, 그는 알코올 중독자이며 여주에게 어떠한 관심도 없다. 여주와 아버지의 대화는 서로 궁금해하지 않는 질문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서로 대답도 안 한다. 그러나 대답이 없는 것에 둘 모두 불쾌감 없이, 항상 그래왔음을 보여준다. 여주도, 외롭다.
여주와 남주가 만난다. 회식이 끝나고 술에 취한 여주가 길을 가는 남주에게 "라이터가 있느냐."고 묻는다. 남주는 라이터가 없다. 남주가 편의점에 들어가 참치캔을 사며 여주에게 라이터를 사준다. 여주는 흡연을 위해 질문을 던졌지만, 남주는 여주의 왜 라이터를 사줬냐는 질문에 "추워 보여서."라고 답한다. 이 말 한마디에 여주는 남주를 따라가게 된다. 그런데 남주가 참치캔을 사들고 가다가 머무른 곳은 골목이었고, 한 고양이에게 참치캔을 먹이고 있었다. 이로 인해 여주는 더욱 따스함을 느낀다. 이후로는 남주와 여주가 함께 걷는다, 순수함 그 자체를 표출하며. 사실, 여주는 남주가 신문을 파는 가판대 앞 승강장에서 지하철을 타는, 남주에게 항상 뒷모습만을 보여주던 사람이었다.
<눈이라도 내렸으면>이라는 제목을 되새긴다. 공간 배경이 부산이다. 눈 보기가 정말 힘든 지역이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의 첫 장면에서는 한겨울이지만 비가 내리고 있다. 이렇게 눈이 특별하기는 하지만, 결국 눈은 외로운 주인공들의 삶을 조금도 변화시킬 수 없다. 그러나 부산에서의 '눈'은 평소에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게 해준다. 눈 속에 보이는 바다, 광안대교, 일상의 모습과 이웃 사람들.. 부산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더욱 특별하게 보이지 않을까. 눈을 소망하는 이유는, 남들이 쉽사리 지나쳐 버리고 마는 익숙해져버린 모습을 특별하게, 눈에 띄게, 다시 보게 만들고 싶어서가 아닐까. 외롭고 외면받는 외톨이들이 서로에게 위안이 되어주는 모습이 던지는 메세지는, 그들을 지나쳐버린 사람들에게 던지는 구조 요청일 수 있다. 구조 요청이 받아들여 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반대로 구조 요청은 무시될 수도 있다. 하지만 외톨이들이 서로 위안이 되어주기 시작했기 때문에, 외톨이들은 앞으로 덜 힘들지 않을까. 이 영화의 상황이 비단 주인공들만의 일일까. 소통이 단절되고 고립되어 강제 묵념에 들어간 현대인의 모습을 대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준 고마운 당신의 모습일 수도 있고.
2016.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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