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힙합이 숲이라면

엠넷(Mnet)의 쇼미더머니(Show Me The Money)는

숲이 우거지도록 비옥한 토양을 만드는 자양분이었을까

아니면 숲의 다양성을 해치는 번식력 좋은 나무였을까


아마도 2012년 즈음,

몇몇의 유명 힙합뮤지션과 수많은 언더그라운드 힙합뮤지션으로

다양한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던 한국힙합.


1년 전인 2011년에는

한국힙합의 큰 기둥을 담당하고 있던 소울컴퍼니(Soul Company)가 해체를 했었고

여느 때와 같이 수많은 크루(Crew)들이 새로 생겨나기도 했고 사라지기도 했다.

(여전히 소울컴퍼니는 전설 그 자체다)

 

표현이 어중간할 지 몰라도

다양함이 태동하고 또 소멸되던 시기였다.

 

여담이지만,

수많은 이슈를 몰고 다닌 HI-LITE(하이라이트)가 2010년에 생겼고

일리네어가 2011년에 생겼다(1에 대한 집념이 대단한게, 2011년 1월1일에 세웠다).

 

또 여담이지만,,

HI-LITE Records(하이라이트 레코즈)는 2015년에 설립됐지만

HI-LITE라는 타이틀로 활동한 건 2010년부터였으니

일개 힙합팬인 나의 인식에는 HI-LITE가 2010년부터 있었던 셈.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2012년 즈음엔 그야말로 한국힙합의 황금기라 할만큼

기존에 활동하던 랩퍼들도 왕성하게 또는 드문드문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고

새로운 랩퍼들도 많이 등장했다.

(참고로 빈지노의 첫 앨범 발매도 2012년)

 

그리고 당시까지만 해도 공연티켓이 꽤 저렴했다..

 

그런데 그 때,

몇몇 래퍼들이 (당시엔 주류 SNS였던) 트위터를 통해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그 열변의 소재는 다름아닌

쇼미더머니(Show Me The Money)였다.

 

당시에도 구닥다리 논쟁거리였지만

"TV에 나가면 그게 진정한 힙합이냐?"라는 식의 논쟁도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나 논란에 제대로 불을 지핀 건

쇼미더머니 제작진의 인식이었다.

 

많은 언더그라운드 힙합 뮤지션들은 프로그램의 상업성, 시청률을 위해 제작진 기획 의도에 맞춰진 방송에 목 메기보다는 자신만의 음악을 하고, 그것을 사랑해주는 팬들과 공연장에서 함께 호흡하는 것을 추구하며 그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쇼미더머니 제작진의 잘못된 인식(또는 무지)이 1차적으로 드러났다.

 

쇼미더머니 프로그램은 경연, 서바이벌을 기본적인 틀로 가지고 있고, 방송프로그램 특성 상 화젯거리를 동반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명랩퍼의 섭외에 더불어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얼굴, 즉 이슈메이커가 필요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브라질과 FIFA랭킹 100위권 팀이 축구경기를 붙는다고 상상해보자. 브라질의 경기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시청을 하겠지만, 100위권 팀이 승리하는 시나리오라면 다음날 스포츠뉴스 1면은 가볍게 도배한다)

 

하지만 쇼미더머니 제작진이 바라는 "이슈메이커"컨셉은 언더그라운드 힙합뮤지션들이 원치 않는 컨셉이었다.

(물론 종종 원하는 분들도 있다만..)

수많은 Hiphop kidz 그들이 걱정돼 안쓰러워
손쉬운 방법으로 그저 관심을 원해
"Issue maker의 컨셉, 대중의 의식을 훔쳤네"

- Rhyme-A-, "Words On The 90's" 中-

 

게다가 쇼미더머니 제작진은 몇 년간 커리어를 쌓아온 언더그라운드 힙합 뮤지션들에게 '완전 초짜' 生 신인 역할을 부탁했다.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으니, 신인이라는 셈이다.

 

여기서 쇼미더머니 제작진의 잘못된 인식이 2차적으로 드러난다.

 

자진해서 언더그라운드 힙합을 하는 뮤지션들을 'TV에 나오고 싶어하는 연습생' 수준으로 생각한 것이다.

 

당시 쇼미더머니에 관한 언더그라운드 힙합 뮤지션들의 인터뷰를 보면 제작진의 태도가 어떠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데, 저런 인식에 갇혀있다보니 당연히 섭외와 연출 권한을 가진 자신들이 갑(甲)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쇼미더머니에 대한 느낌은

善과 惡이라기보다는 甲과 乙로서 한국힙합씬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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