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수색역> 리뷰. 스포 無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다. 크기를 비교할 순 없되, 합은 결국 0으로 다가가지않나.
2002년, 한.일 월드컵은 한국에게 '4강 신화'를 안겨줬다. 그렇게 예민한 안보 의제도 뒤로 할 정도로 뜨거웠다. 그렇다면 그 뒷면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재개발에 맞서는 투쟁을 소재로 한, 다양한 예술작품은 어렵지않게 접해볼 수 있다. 하지만 영화의 배경인 수색동의 주민들은오히려 재개발만을 기다리고 있다. 자본을 반긴다. 투쟁의 측면은 철저히 배제된 채, 그 이면에서 인간성만이 파괴된다.
이 영화의 제목인 수색역은 상암월드컵경기장 뒤쪽에 위치한다. 90년대 후반, 월드컵 유치에 따른 재개발에 대한 논의가 수차례 번복된 동네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영화의 주인공인 남고생 4명이 각자의 삶을 찾아나서며 각자의 욕망에 따라 누구는 세속적으로, 누구는 풍속적으로 살기를 선택한다. 그러나 평행이 아니라면 맞닥뜨리기 마련이 아닌가. 결국 서로 다른 삶들은 충돌하고 정말 낯뜨거울 정도로 부끄러운 장면을 연출해낸다.
물론, 인간의 욕망 표출은 필연적이고 자본의 유입이 더해진다면 개개인의 욕망들이 상충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제작자는 당연해보일 수 있는 장면에 의도적으로 당연히 부끄러울 수 밖에 없는 장면을 삽입한 것으로 보인다. 보편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장면을 의도적으로 당연해보일 수 있는 장면에 삽입하며 주제의식을 강조한다.
- 항상 배보다 큰 배꼽.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나의 공간 배경이 제천에서 서울로 바뀐 것이다. '재개발'이 이뤄진 거나 다름없다. 내 속의 인간성은 여전한가? 제천을 배경으로 만 19년(단양에서도 잠시 살긴했으나 제천과 같은 부류로 엮임)을 살았고 서울을 배경으로 만 4년을 살았다. 나는 많이 변했나? "서울 살더니 변했다"는 얘기를 술자리 농담으로는 들었어도 진지하게 들은 적은 없다.
제천에 비해 서울은 확연하게 자본이 지배한다. 너무나도 사소한 사례일 지라도, 제천에서 축구할 때 돈내고 축구를 해본 적은 없지 않나. 과장 조금 보태서 서울에선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지 않나. 하지만 나는 <수색역>의 주인공들처럼 자본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다. 물론 나는 제천에서도 자본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다는 차이가 있지만, 본질은 자본을 받아들이는 자세다.
누구나 '입에 풀칠은 해야지'라고 생각한다. 허나 개중 누구는 돈이 중심이 된 삶을 구성하고 누구는 돈을 중심에는 두지 않는 삶을 구성한다. 어떠한 준비도 없이 자본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그저 우연히, 혹은 남들따라 접해버린 일정기간의 노동 후에 인쇄되어 나오는 통장 잔액에 정신이 지배되는 것이다. 돈을 삶의 중심에 둘 것인지, 변두리에 둘 것인지 선택하기는 커녕 이미 돈은 삶의 중심에서 삶을 중앙집권해버리고 만다.
"우리는 어떠한 삶을 추구해야 하나?"라는 질문의 모범답안을 애석하게도 도덕 교과서에서 배워버렸다. 스스로가 생각할 기회를 박탈당했다. 오히려 모범답안을 비껴서 솔직당당을 표방하고자하는 삐딱이가 멋져보이기도 하다.
다시 한 번, "우리는 어떠한 삶을 추구해야 하나?"
마침.